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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K-Nomad(해외인턴) Program 참가기 3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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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부 2018-02-13 14:13

 

책에는 없는 현장실무를 경험하며‧‧‧국제물류학전공 4학년 김형준

 

헝가리 교환학생과 K-move 프로그램, OK챌린지 프로그램.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1년여의 어학연수. 오랜기간을 대학생 신분으로 있었던 나는 드디어 졸업반이 되었다. 학교에서의 더 이상의 혜택은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운명처럼 찾아온 기회. 지도교수님께서 K-nomad 프로그램에 대해 안내해 주셨는데 해외 3개국에 4개 업체에 5명의 졸업반학생들을 인턴으로 파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때마침 시기가 맞아떨어졌고 취업으로 이어질 수도, 취업이 되지 않더라도 해외에서 업무경험을 할 수 있다것에 매력을 느껴 지원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천경해운(CK Line)이라는 선박회사의 홍콩법인으로 가게 되었다. 전에 알지 못했던 회사 ‘천경해운’은 내 생각을 훨씬 뛰어넘어 좋은 근무환경을 가진 회사였고 세련되고 효율적인 회사였다. 학생들이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실무에는 존재한다. 나 또한 이 분야가 내 적성에 맞느냐를 끊임없이 고민해왔지만 “백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취업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분야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것만으로도 내게는 너무나도 좋은 기회였다.

할 줄 아는 외국어라고는 완벽하지 않은 영어뿐이었던 내게 홍콩사람들은 영국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기 때문에 영어를 잘 구사한다는 이야기는 굉장한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도착했을 때 홍콩사람들 대부분의 영어수준은 중,고등학교 수준이었고 문제는 9개의 성조가 뒤섞인 영어발음이었다. 나 또한 완벽한 영어구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꽤나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도 많은 직원들이 우호적이어서 우리는 자주 어울리며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 때, 초등학생 시절 배워 놓았던 한문이 꽤나 도움이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이해가 안되면 한자를 써서 설명하고 비슷한 발음 또한 많아서 이걸 어떻게 아느냐며 놀라기도 하며 친분을 다졌다. 이렇게 언어장벽은 해결이 되나 싶었는데 복병은 따로 있었다. 바로 취직이었다. 인턴으로 있으면서 선사업무에 매력을 느꼈고 선사취업에 대해 알아보는 중 우리나라 선사 대부분이 한중일을 근간으로 한 근해선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과의 무역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선사에서 일하고 싶다면 중국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소중한 정보였고 설사 알았더라도 피부로 체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로 인해 한국에 돌아가서 내가 준비해야 할 우선순위에 중국어가 포함되었다.

파리에서 처음으로 반짝이는 에펠탑을 보았을 때,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나이아가라폭포를 보았을 때. 항상 처음은 나에게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 시야가 넓어진 내 자신을 볼 때의 그 짜릿함이란. 내게 해외인턴은 <새로운 경험으로의 동경>으로 시작되었다.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 좋은 경험이 될거야.” 그렇게 시작되었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시작한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빠른 시기에 해외인턴을 결정한 것이었다. 캐나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고, 정리해야 할 것들이 태산같이 쌓여 있었다. 책보단 몸으로 부딪히는 걸 즐기는 천성을 타고난 지라 급하게 결정한 후 한국의 모든 것들을 정리했다. 무모하리만큼 갑작스레 시작하게 된 해외인턴이 내게 준 것은 역시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 그 사람들로부터 듣는 생생한 현장, 여행으로는 알 수 없는 홍콩의 숨은 모습들. 세계 최고의 부동산 가격을 자랑하는 홍콩이라는 사실을 넘어 포워딩회사들의 물류창고까지 고층에 위치 사실은 보기전엔 믿기 힘들다. 두 번째는 홍콩 법인장님의 한국어 수업 제안을 수락했다는 것이다. 자율참여였음에도 50%가 넘는 직원들이 수강신청을 했고 3개월 가량의 짧은 인턴 기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수업을 통해 직원들과 빠르게 융화될 수 있었고 일주일에 한,두 번 따로 만남을 가질 정도로 깊은 유대를 쌓을 수 있었다. 누가 개인주의가 만연한 홍콩이라 했던가. 마지막에는 정많은 직원들이 주는 선물을 챙기느라 가지고 있던 짐을 버려야 할 정도였다.

나는 천경해운에서 3개월간 해상업무 및 영업보조업무, 사내직원들 한국어교육에 참여했는데 법인장님이 “해외까지 인턴을 왔으니 많이 얻어 가야한다.”라고 늘 말씀하시며, 일대의 엄청난 물동량을 담당하는 주강삼각주 지역에 대한 조사를 시키거나 사내프로그램 활용방법, 실무에선 어떻게 Ocean Freight가 조정되는지 등에 대해 알려주셨는데 특히 좋았던 부분은 일주일에 한번 홍콩의 지리적 특수성에 대한 교육과 더불어 실무에서 많이 쓰는 용어 등을 짚어 주시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무역조건에 관한 국제규칙인 인코텀즈를 배우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론을 외우는데 여기서는 FOB조건과 CIF조건의 사용이 대부분이며 운임의 종류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크레인 운용비나 특정화물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컨테이너 등에 대해 배울 때에는 실무를 배운다는 만족감이 컸다. 나는 종종 Mr. Engine이라는 영업부직원의 영업보조업무를 위해 여러 거래처들을 직접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포워더가 한국에 뿌리를 두지 않은 한국기업인 것에 놀랐고 그들을 대하는 Engine의 방식에 두 번 놀랐다. Engine의 영업방식은 성실함이었다. 사측 선박에 선복(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없어도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일단 방문하면 상세하고 친절하게 우리 업체의 해운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고객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은 광동어를 모르는 내가 봐도 진심이 느껴졌다. 그 때문에 다른 업무보다 영업업무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영업부에 지원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사실 외국에 사는 게 세 번째였기 때문에 낯선 경험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고 싶었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실행하기로 했다. 말은 거창하지만 주말마다 여행하기, 직원들에게 항상 친절하게 대하기, 일주일에 두 가지 이상의 전공지식 공부 또는 복습하기, 금요일 저녁에는 다음 주에 가르칠 한국어 준비하기, 배운 건 그때그때 이해하고 정리하기 등 사소한 습관과 일주일 단위의 계획이었고 나름 충실하게 계획에 따라 생활했다. 그렇게 생활한 결과 직원들과는 너무 친해져 주말이 없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컴퓨터 내에 자료에는 내가 이해하고 정리한 전공 자료들이 가득했고, 제목만 봐도 내용이 생각이 났다. 영어로 한국어를 가르칠 준비를 하며 영어공부도 되었고, 앞서 언급했던 한문을 섞어서 가르치며 홍콩문화에 충분히 녹아들 수 있었다. 해외 생활이라 외롭기도 하고 어머니의 밥이 그립기도 했지만, 저녁이면 가족들과, 친구들과 전화도 하며 외로움을 달래기도, 또 다행히 홍콩에서 만난 주변 모든 분들이 많이 도움을 주셔서 시간이 감에 따라 공허함도 채워지는 나날이 되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걸 또 한번 느끼는 기간이었다. 내가 단지 한 것은 유의미한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지식은 덤으로 얻어갈 수 있는 기회였다. 이 글을 빌어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국제물류학과 한철환 교수님과 서수완 교수님, 부족했던 인턴을 애정으로 보살펴 주신 천경해운 이준동 홍콩법인장님 여하 직원들과 관계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