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환 동서대 국제물류학과 교수]
-선박에서 하림그룹의 HMM 인수에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는 HMM 선원들. HMM해원노조 제공-
우리나라 최대 해운기업인 HMM의 매각을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당초 기대와 달리 대기업은 불참한 채 자금 동원력이 떨어지는 중견그룹만 매각 경쟁에 뛰어들면서 ‘새우가 고래를 품는 격’이라는 지적에 이어 최근에는 노조까지 부실매각이라며 매각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이번 매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영난에 빠진 현대상선(현 HMM)에 자금을 지원해 준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지분 57.9%가 대상이다. 지난달 인수가격으로 6조 4000억 원을 제시한 하림그룹 계열사 팬오션과 사모펀드 운용사인 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현재 최종 인수조건을 놓고 협상이 진행 중이다.
HMM의 자산 규모는 작년 4월 기준 25조 7880억 원으로 재계 19위인 반면 하림그룹은 17조 910억 원으로 재계 27위에 불과하다. 하림이 HMM을 인수하게 되면 단숨에 자산 42조 8000억 원으로 재계 13위로 급부상하게 된다. 1976년 육계사업으로 시작해 사료, 식품가공, 유통 등 종합 식품기업으로 성장한 후 2015년 국내 최대 벌크선사 팬오션을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해운업에 뛰어든 하림이 HMM까지 품게 되면 종합 물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HMM은 국민 혈세로 살려낸 해운사
팬오션 보유 중견기업 하림 인수 나서
‘새우가 고래 품는 격’ 우려 시선 많아
투자금 회수 급급한 매각 추진은 안 돼
해운 경쟁력 강화 위한 국익 관점 필요
그럼에도 하림의 HMM 인수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불안하다. 먼저 하림그룹의 자금조달 능력이다. 현재 하림은 본인들이 제시한 인수대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향후 HMM 운영에 들어갈 막대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 의문이다. 하림 측은 인수대금의 절반가량을 인수금융으로 확보하고, 나머지는 재무적 투자자인 JKL파트너스로부터 5000억 원을 마련하며 부동산과 선박 매각 등 자산유동화를 추진한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 부족한 3조 원가량은 결국 팬오션을 통해 유상증자로 조달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한다. 이 경우 몸집이 작은 팬오션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위험이 크다.
이렇다 보니 하림은 HMM 주식배당으로 현금을 일부 조달하기 위해 영구채 주식 전환에 3년 유예를 요구했으나 동원그룹으로부터 공정성 위배라는 지적을 받고 철회한 바 있다. 더구나 매입에 성공하더라도 호황은 짧고 불황은 긴 해운경기의 특성과 미래 경쟁력 강화 때문에 친환경 선박 확보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점을 감안할 때 과연 자본 규모가 크지 않은 하림이 정상적으로 HMM을 운영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둘째, HMM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벌어들인 10조 원 규모의 현금성 유보금의 전용 가능성이다. 자본조달 능력이 떨어지는 하림이 급한 대로 인수금융 조달 후 HMM이 보유한 현금성 유보금에 손대지 않겠냐는 우려이다. 이 경우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린 기업의 이익에 손을 댄다는 ‘먹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행히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하림 측은 해당 유보금을 HMM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금융논리를 앞세워 한진해운 파산을 경험한 당국이 국민 혈세를 투입해 살려낸 국내 최대 선사를 자금력도 부족한 기업에 매각하여 국가 기간산업의 미래를 맡기는 게 과연 최선의 선택이냐는 것이다.
이번 매각의 초점은 수출입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에게 생명선과 같은 해운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추진돼야 한다. 투자금 회수를 통해 재무건전성을 개선해야 하는 산업은행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나 시간에 쫓겨 졸속 매각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반드시 이번 매각을 성사시켜야 한다면 금융논리의 관점에서만 볼 게 아니라 국익 관점에서 해운산업의 전략적 중요성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매각조건을 엄중히 고려해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하림 또한 HMM 인수가 ‘승자의 저주’가 아닌 ‘신의 한 수’가 되기 위해선 HMM 인수의 진정성을 입증할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국내 최대 선사 HMM 인수는 특정 기업의 몸집 불리기 수단이 아니라 한국해운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기회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한 의지와 역량이 있는 기업이 HMM을 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제2의 한진해운 사태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한진해운이 파산한 지 7년이 되는 다음 달 한국 해운산업의 명운이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