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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랑스'의 T (장제국 동서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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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3 13:41

 

[부일시론] '톨레랑스'의 T

 

 

 

 

 지난 2월 초에 말레이시아 페낭에 다녀왔다. 페낭은 '동양의 진주'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30도를 웃도는 여름 날씨와 적도 부근 열대지방 특유의 분위기를 만끽하러 온 수많은 외국인들로 거리는 북적였다. 5년 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 도로와 도시 경관 등 인프라도 눈에 띄게 향상되어 있었다. 영국 식민지 당시 세워진 유럽풍의 건물이 즐비한 조지타운이라는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도시 전체가 에메랄드색 바다와 잘 어우러져 매우 운치 있는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페낭은 관광업과 더불어 세계 굴지의 제조업체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비교적 저렴한 노동력이 있고,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춘 인재들이 많다 보니 다국적회사들이 줄지어 이곳에 생산 공장을 세우고 있다. 2만여 개의 일자리가 남아돌 정도로 젊은이들의 취업 걱정이 없는 곳이라고 하니 청년실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다양성 배척한 성장 일변도 정책            
     최근 극심한 사회 갈등 초래 
 
    창의적 인재가 자유 만나면 
     위대한 새로움이 탄생한다 
 
     대륙과 태평양 잇는 부산을 
    톨레랑스 넘치는 창의도시로


  이러한 페낭이 이제 또 다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페낭 주지사는 필자를 만나자마자 대뜸 페낭은 이제 창의기반산업으로 옮아가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창의산업을 일구어내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T가 필요한데, 그것은 'Talent(재능)' 'Technology(기술)', 그리고 'Tolerance for New Ideas(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너그러움, 즉 '톨레랑스')'라고 했다. 그는 요즘 같은 세계화된 세상에서는 앞의 두 T에 해당하는 재능과 기술은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재능 있는 사람은 해외나 타 지역에서 초빙해 데리고 오면 되고, 필요한 기술은 돈을 지불하고 사 오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 T에 해당하는 '톨레랑스'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덕목인데, 이것이 없으면 진정한 창의도시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톨레랑스를 지키는 데 직을 걸고 있으며, 그 결과 페낭이 동남아시아의 어느 도시보다 자유로움과 너그러움이 보장되어 있는 곳이라 자신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그간 급속도로 성장해 왔다. 그저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만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고, 그것이 주효하여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성장 일변도의 정책은 그 과정에서 '다양성'에 대한 배척을 낳았고, 이로 인해 극심한 사회갈등이 초래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각 분야의 갈등은 서로 '다른 것'에 대한 불인정과 무조건적 거부에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습관이 계속되면 '불포용'이라는 달갑지 않는 인자가 한국 사회의 고질적 DNA로 자리 잡게 될지도 모른다. 

  이래서는 우리 사회는 창의시대로 옮아갈 수 없다. 톨레랑스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가 키워나가야 할 중요한 덕목인 것이다. 

  톨레랑스가 없으면 옳고 그름밖에 없는 살벌한 사회가 된다. 내가 하는 것에 찬동하면 정의이고 그러지 않으면 불의가 되는 긴장감이 감도는 사회이다. 최악의 경우 힘을 가진 자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될 때 창의성은 발 붙일 틈이 없어진다. 

  톨레랑스가 없으면 사회는 패거리로 나뉘어 영원히 갈등할 수밖에 없다. 서로 맞서려면 힘이 필요하고, 그러다 보니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뭉쳐 전의를 다지게 된다. 우리 사회에 난무하는 타협 없는 집단적 행동 표현은 바로 이런 힘 대결의 산물인 것이다. 

  톨레랑스가 없으면 사람들은 톨레랑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말하는 '평평해진 세계'에서는 더 많은 자유와 너그러움이 있는 곳으로 옮아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최근 세계 각국과 도시들은 적극적으로 자유에 대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 미국과 서유럽이 이민자들의 최고 선호지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바로 모든 면에서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은 전 세계에서 창의적 인재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된 이유에 대한 한 조사에서 180개국에서 몰려든 2천여 개의 기업들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열린 문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창의적인 인재가 진정한 자유와 만나게 될 때 상상력의 한계는 없어지고 위대한 새로움이 탄생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 부산은 일자리 창출과 창의도시를 위해 매진하고 있다. 광활한 대륙과 넓디넓은 태평양을 잇고 있는 부산이야말로 톨레랑스라는 배포를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부산이 아시아에서 가장 톨레랑스가 넘치는 곳이 되어 '재능'과 '기술'이 활짝 필 수 있으면 좋겠다. 

 

[부일시론] '톨레랑스'의 T

 

/ 장제국 동서대학교 총장
2015-03-01 [21:34:07] | 수정시간: 2015-03-02 [10:49:08] |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