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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학전공 [해외취업수기]경영학부 졸업생 이종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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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부 2012-01-26 19:04

 

 

 

2004년 10월 동서대 해외인턴 프로그램 통해

중국 남경서 인턴한 것이 해외정착 밑거름


 

후배님들! 대기업만 고집 말고 중소기업에도

성장 기회 많으니 과감하게 도전해보시길

안녕하세요. 저는 DSU 99학번 경영정보학과 졸업생 이종혁입니다.
저를 되돌아보고, 해외 인턴과 해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후배님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제 경험을 적어보겠습니다.

 

2003년 3학년 1학기에 말레이시아 교환학생으로 가려고 준비를 하던 중 출국 2주일을 앞두고, 전 세계적으로 사스(SARS) 문제로 교환학생 계획이 전면 취소가 되었습니다.


모든 준비를 다 하고 선,후배들과 이별 준비를 하고 있던 찰나에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학교측에 “모든 책임은 본인이 지겠으니 가게 해 달라”고 요청도 해 보았으나 결국은 못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때부터 영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하지 못했었고, 말레이시아 교환학생을 계기로 새롭게 열심히 해 보려고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세월을 어영부영 보내던 중 저의 어머니의 압박으로 인해 2004년 4학년 1학기가 시작할 무렵 저의 이모부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모부께서 창원에서 울산의 H사를 상대로 자동차 제어쪽 사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인턴이라도 해 보려고 이모부께 의논을 드렸는데 이모부는 저에게 “네 스스로 생각에 너의 급여 가치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무리 못 받아도 100만원은 받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하자 이모부께서는 “내가 너 이모부가 아니고, 한 업체의 사장으로서 솔직하게 말 해 준다면 너에게 100만원 씩이나 줄 회사는 없을 것 같다”고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해서 준비가 되었을 때 다시 이야기하자”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화가 많이 났었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이모부의 말씀이 틀리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학 입학 후 4년간 해 놓은 것은 없고, 자격증도 없고, TOTIC , TOEFL 점수가 높은 것도 아니고….

 

이 상태로 졸업을 해도 취직을 하기 어렵겠다고 생각을 하던 중, DSU와 부산시 해외인턴취업지원사업이라는 좋은 기회를 알게 되었고, 이번 기회에 제 목숨을 걸고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오기 전 보름정도 동서어학당에서 중국어 공부를 했었지만 아는 것은 “你好”와”谢谢”, 일상회화 정도이고 겨우겨우 외운 자기소개 수준이었습니다.
2004년 10월21일 저를 포함한 4명의 더블백들은 중국 남경 LGEND라는 업체에서 인턴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라는 사회를 처음 경험하는 곳이라 긴장도 많이 했었지만, 어떻게든 잘 해서 인턴십이 끝나더라도 남아서 일을 하고 싶었기에 정말 열심히 했었습니다.

중국에서 일을 하려면 중국어는 반드시 알아야겠다고 생각하여, 새벽 4시면 공장에 도착하여 중국어 공부를 하였고, 처음 듣는 말이나 모르는 말은 무조건 발음을 적고 그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매일 복습을 하였습니다.

 

LGEND에서 처음으로 배정된 부서가 연구실 기획관리부였습니다. 주재원님들의 배려로 연구실 전 부서를 배울 수 있도록 OJT를 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어가 부족하여 절반 이상을 알아들을 수 없었고, 수업 중 졸기도 하였고 문과생이 전자계열의 일을 하려고 하니 힘든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같은 부서에 중국에서 현지채용으로 입사한 대리님이 계셔서 제가 빨리 회사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중국은 유럽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듯 하여 한국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들이 주 5일근무를 합니다. 평일 퇴근 전까지는 주어진 일을 하고, 퇴근 후 현지인들과 탁구, 배드민턴 등을 치면서 중국어도 배우고 친목을 다졌습니다.

 

주말에는 지금의 wife가 된 중국인 여자와 남경 유적지 구경, 시내쇼핑, 영화관람 등 중국 문화 배우기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중국에서 계속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집 사람 때문일 것 입니다. 집사람과 사귐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 중국어 실력도 빨리 올라갔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중국에 대한 이해도 높았습니다.

 

기획관리부서에서 1개월 근무를 하고 재경부로 자리를 이동했습니다. 부서의 특성상 인턴사원에게 정식 업무를 주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로 인턴 사원들에게 복사, 잡무 등을 많이 맡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현상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턴이 끝나고 그 사람이 직원으로 일을 하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기 일만해도 바쁜데 인턴에게 열심히 업무를 가르치는 그런 성인군자는 없을 것 입니다. 스스로 직원들의 업무를 보고 알려고 노력해도 많은 것을 알기는 힘들고 전체적인 흐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성공일 것 입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12월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인턴을 한 지도 2개월째 입니다. 내년 1월이면 인턴 계약기간이 끝납니다. 저를 포함한 동기2명은 인턴이 끝나도 계속해서 중국에 남아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중국으로 출국할 때부터 “중국에서 뼈를 묻겠다”는 각오였습니다. 이런 저희 사정을 아신 많은 분들이 저희가 중국 남경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 자리를 주선해 주셨습니다.

 

 

저는 운 좋게도 ‘동양전자 유한공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5년 1월 15일까지 인턴근무지인 LGEND에서 근무를 하고 1월15일부터 1월25일까지 동양전자에서 근무를 하였습니다. 2005년 2월18일이 졸업식이라 그 전까지 신변정리 및 준비를 하고 2005년 2월21일 정식으로 동양전자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양전자는 국내에 5개의 법인과 해외에 6개의 법인을 거느린 중견기업입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을 드렸지만, 인턴십을 한 것만으로는 회사 경험을 했다고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조직문화, 사회생활의 경험에는 플러스  요인이 있지만, 당장 업무를 할 준비는 미흡할 것 입니다. 동양전자에 입사를 하고 3개월 과정의 OJT를 하였습니다.

 

다른 기존의 주재원들과 달리 자신만의 주특기 분야가 없었기에 회사의 모든 분야(생산,자재,구매,영업,품질,개발…)를 두루 배워야 했습니다. 경영정보학을 전공하였기에 현장관리가 아닌 사무직 쪽으로 배정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셨습니다.

 

제가 맡은 업무는 개발과 QA이었습니다. 제조공장에 있어 불량은 어쩔 수 없이 발생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관리를 하느냐에 따라 그 불량률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0%의 불량은 있을 수 없기에 QA부서가 반드시 존재합니다. 동양전자에 입사를 하고 3개월이 흐른 시간에 현지 직책 과장으로 QA 부서장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후배님들께 한 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미 해외에 나와서 경험하셨던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앞으로 해외로 나오실 후배님들께서는 이 것은 반드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와 같이 해외 인턴십이든, 어떠한 방식으로 해외에서 취업을 하시게 되면 그것은 현지채용이지 정식 주재원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현지 주재원은 한국에서 정식으로 인사발령을 받고 부임한 사람들로 현지채용과는 급여를 포함해서 복리 등 처우의 차이가 많습니다. 저도 처음 이 문제로 인해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저도 다른 주재원들과 똑같이 열심히 일을 하고, 가끔씩은 주재원들이 하기 싫은 업무도 대신해 주는 경우도 있는데, 회사의 처우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시지 못 한다면 힘든 생활이 되실 것 입니다.

 

현재 해외에 있는 대기업을 포함해 많은 중소기업은 현지채용을 원하고 있습니다. 주재원 1명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함께 나와 있을 경우 주택보조금, 자녀 학자금(50%) 등 비용이 많이 발생합니다. 그렇지만 현지채용의 경우 업무는 잘 모르지만, 현지 언어는 주재원들보다 훨씬 잘 할 것이고 급여의 경우도 주재원의 20~30% 수준에서 해결이 되니 회사의 입장에서는 1명의 주재원보다 다수의 현지채용을 하는 것이 이익인 것이지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처음 현지채용으로 동양전자에 입사를 하고 3개월 동안받은 급여가 3,000rmb입니다. 3개월이 지나고 6,000rmb를 받았고 그후 약 1년간 9,000rmb를 받았습니다. 만약 주재원이었다면 약22,000rmb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을 빨리 포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혼자 고민하고 비관해 봤자 결국 저만 힘이 들고 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여러분께서는 현지채용입니다. 현지채용이 주재원이 되기는 참 힘들지만 운이 좋아 주재원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재원과 비교하시지 마시고 항상 자신이 열심히 하시면 좋은 기회를 잡으실 수 있을 것 입니다.

 
 

다시 저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현지채용으로써 주재원과 같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마침 사세가 점점 확장되어 제가 운 좋게 폴란드 공장 Set-Up member로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현지채용으로 입사하고 1년 8개월이 걸려 주재원이 되었습니다. 현재의 집사람을 폴란드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 중국인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였고, 결혼 일주일 후 폴란드로 떠났습니다.

 

한국에서 폴란드로의 직항이 없어 먼저 독일로 11시간을 날아가서 다시 경비행기를 타고 2시간을 날아 폴란드 브르츠와프로 갔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폴란드는 유럽 국가이지만 개방이 된 지도 얼마되지 않았고 아직개발도상국의 수준인 것 같습니다. 폴란드는 폴란드어를 사용하는 국가로 영어를 아는 현지인이 많지 않습니다. “hello”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폴란드에서도 이제 주특기인 개발 & QA의 정식 부서장이 되어 일을 하게되었습니다.

 

저희 부서에 딱 1명이 영어를 할 수 있었고 나머지 부서원들과는 body language를 하고 잘 모르는 영어, 폴란드어를 사용하면서 소통을 했습니다.
공장이 Set-Up 단계였기 때문에 일이 없는 시간은 공사를 돕고, 직접 삽집을 하기도 했고, 사무실의 인테리어도 직접 해야 되었고, 현지인들에게 업무를 가르쳐야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새로 이루어 가는 과정으로 하나하나 이루어 낼 때마다의 성취감은 지금까지 제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쁜 순간입니다. 첫 개발품이 나와 처음으로 고객에게 납품을 할 때, 현지인들이 처음으로 직접 측정을 하고, 검사를 할 때 등등 그 희열은 평생 제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 입니다.


회사는 바쁘게 돌아갔고 집사람은 결혼 일주일 후 남편을 회사에 빼앗겨 버렸고, 마침 첫 애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회사의 규정상 부임 1년 후 안정이 되었을 때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있지만, 저의 특수 사정을 고려해 부임 6개월 후 집사람을 폴란드로 데리고올 수 있었습니다. 집사람을 데리고 온 후 가장이라는 부담감은 참 컸지만…

 

모든 일을 아직 어린 저와 집사람이 결정을 해야 되고 그 결과를 감당해야 되었기에 힘든 일도 많았고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집 사 람과 둘이서만 있었던 폴란드의 시절이 저와 집사람이 가장 어렵고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하고 진심으로 한다면 어느 곳에서나 통하리라 생각됩니다. 집사람에게는 미안했지만 정말 회사를 위해 젊은 열정을 쏟아부었고, 현지채용이 아닌 주재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간 저의 보배인 첫딸이 태어났고, 집사람의 고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젊고 어리지만 제가 생각하는 회사 생활의 철학은 ‘가슴대 가슴으로 일하자’입니다. 어차피 출근을 하면 몸은 힘들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까지 힘이 들고는 싶지 않았기 때문에 즐기면서 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고, 남들보다 조금만 부지런히 한다면 누군가는 알고 결국 그 혜택이 돌아온다는 것을 후배님들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폴란드의 생활이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가족들과 함께 프라하 여행을 가 보기도 하였고, 독일도 가 보았습니다. 항상 집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었습니다. 집사람 혼자서 애기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고, 하루종일 아무 하고도 이야기를 할 수도 없던 집사람이 우울증 초기증상을 보여 폴란드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고, 회사에서 저의 사정을 잘 이해해주고 많이 도움을 줘서 다시 남경법인으로 복귀를 할 수 있었습니다. 폴란드의 1년 7개월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중국 남경 법인으로 복귀를 했을 때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제가 남경 공장에서 근무를 할때부터 있었던 직원들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시 복귀를 하고 이제는 제 입지가 옛날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직원들이 저에게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제가 느낀 폴란드인과 중국인의 차이점입니다.
폴란드 직원들은 자기의 boss(부서장)에게는 목숨을 겁니다. 현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간 적이 있는데, 1개월 급여만큼의 음식을 준비를 해서 접대를 해 줍니다. 제가 왜 이렇게 무리를 했냐고 하니, 자기들의 풍습도 있지만 자기의 boss가 오기 때문에 최대한의 준비를 했다고 하였습니다.

 

회사를 벗어나서는 우리가 TV, 영화에서 보아왔던 외국인끼리 만나면 볼에 KISS를 하듯 저에게도 그렇게 인사를 합니다. 그렇지만 회사에서는 제가 같이 청소를 하려고 빗자루를 잡으면 boss가 왜 하냐고, 그런것 하면 안된다고…절대 충성을 합니다. 아시아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순수하고 맑다는 느낌입니다.

 

이에 비해 중국인 직원들은 사람 관계에 있어 굉장히 폐쇄적이고 소극적입니다. 자기의 인사와 상관있는 최종 인사권자에게는 비열할 정도로 대하지만, 일반 관리자들(상관)에게는 어느 정도의 존중은 하지만 분명히 그 차이가 있습니다. 글 중간에 말씀을 드렸듯이 저는 ‘마음 대 마음’으로 일을 하려고 하는데, 3번의 아픈 기억이 있었습니다.

 

저도 저 마음을 다 줬었고 그 친구의 마음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떠한 이유든 회사를 떠나게 되었을 때 정말 매정하였고, 언제 저와 그런 사이였던가 할 정도로 차갑게 변합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꼭 ‘마음 대 마음’으로 일을 할 필요가 있나 후회해 보지만, 그래도 마음은 통하리라 생각하고 아직도 변함없이 마음을 주고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고 겪은 것이 ‘답’은 아닙니다. 그저 저의 경험입니다.
후배님들께서도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시고 여러 현지인들과의 좋은 추억을 쌓아 보시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남경으로 복귀를 하고 1년 후 개인적인 문제로 동양전자에서 퇴사를 하였고, 약 3개월가량을 백수로 놀았습니다. 후배님들께서 혹시 저와 같은 경우가 생기시면, 우선 다음 일자리를 반드시 구하신 후에 그만두십시요.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찾으면 되겠지 생각되지만, 특히나 해외에서는 국내보다 더욱 어렵습니다. 시기와 여건이 잘 맞아서 퇴사를 하고 바로 직장을 구해지면 best한 경우지만, 현재와 같이 어려운 시기에 퇴사를 하고 다시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리고 해외에서 근무를 하시게 되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알아 두시기를 추천합니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국인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여러 방면의 사람을 알 수 있으시다면 좋은 관계를 맺어 두시기 바랍니다.

 

3개월을 놀면서 얻은 부분도 많고, 잃은 부분도 많았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현재의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회사는 그 전의 회사보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그 나름의 이점이 많습니다.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저희의 스펙, 여기서 말씀드리는 저희의 스펙은 DSU을 졸업하시거나 현재 재학생이 일반적으로 삼성이나 LG등 국내 대기업에 입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 입니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이 있으면 상황은 다르겠지만…

 

국내의 현재 실업률이 아주 높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소 기업은 아직 일자리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눈과 자존심을 낮춘다면 어디든지 일자리의 기회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일할 자리가 있다면 어디든지 가 보십시요. 거기서도 자기가 성장할 기회는 많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십시요. 그 동안 살아왔던 과정과 현재의 나의 능력 등을 생각하시고 밑에서 부터 시작해 보시는 것도 나쁜 것 만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아직 어린데, 인생을 많이 살아본 사람처럼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

 

현재 제가 일하는 업체는 작은 기업으로 법인장님과 저만이 한국사람이고 120명의 현지인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공장장의 직책을 맡고 있어 관리, 생산, 품질, 자재, 구매…모든 회사의 업무를 관장하고 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이런 수업을 받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 스스로 자부합니다. 법인장님께 의사결정 보고를 드리지만, 거의 모든 업무를 제가 알아서 결정하고 정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십니다.

 

비록, 전 업체에서 보다는 급여가 적지만 기타 여러가지 부분에서 충분히 보상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지금은 골프가 대중화가 되어가고 있지만, 저도 이 업체에 온 뒤 골프를 시작할 수 있었고 , 가족들과도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현재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후배님들께 좋은 경험을 들려드려야 되나 워낙 말 재주가 없어, 정말 말 그대로 저의 수기가 되었네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무작정 외국을 동경해서 오시지는 말아 주십시오. 제가 2004년 남경에 왔을 때 100명이 넘는 인원이 중국 곳곳에 흩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후로도 물론 많은 인원들이 매년 중국으로 왔었구요.

 

그 많은 인원들 중 현재 남아 있는 인원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단순히 3개월 인턴십을  하자라고 생각하고 오신 분들도 많으셨겠지만, 막상 중국에 와보니 고향이 그립고, 말도 잘 통하지 않고 회사의 대우도 생각했던 것과는 분명히 다를 것 입니다. 그것을 극복을 하셔야 남들보다 조금은 앞서가실 수 있는 기회가 올 것 입니다.


“중국에서 뼈를 묻겠다”라는 각오가 필요하실 것 입니다.

인턴십 1기 선배로서 학교측에 부탁 말씀드립니다. 가능하다면 후배들에게 많은 시간을 중국어를 배우고 올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중국어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빠른 시간내에 적응을 할 수 있고, 회사도 그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지루하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와서 고생을 한 선배의 입장에서 후배님들의 번창을 위해 진심어린 마음으로 적은 것이라고 이해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많은 후배님들께서 좋은 기회를 꼭 쟁취하셔서, 꿈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