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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목실 2014-05-29
<작은 것에 목숨 거는 지혜 >
유의신 교목실장
우리나라 옛사람들의 말에 ‘군자(君子)는 대로(大路)를 걷는다.’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하면 크게 될 사람은 큰 뜻을 품고 큰 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지 시시하게 사소한 것들에 연연하며 살아서는 큰 인물이 못 된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윌리엄 클락(William S. Clark)의 명언 Boys, be ambitious!를 우리말로 옮길 때 ‘야망’ 대신에 대망(大望)으로 하여 청소년들에게 큰 꿈을 꾸라고 권하곤 한다. 얼마나 큰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으면 우리나라 국호를 대(大)한민국이라고 했겠는가? 크게 생각하고 큰 것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의식 속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큰 것은 좋은 것이고 작은 것은 나쁜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자리 잡게 되고 만다. 그래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크게 되면 모두가 큰 자 앞에서 아부하는 군상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게다가 큰 자를 비난이나 비판을 하면 힘으로 누르며 군림해도 감히 건드리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각종 사회악을 저지르는 큰 자들(세칭 성공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희괴한 나라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역사는 결코 작은 것을 무시하거나 사소한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소자(小子)에게 물 한 컵 대접한 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작은 자 소외 자 가난한자를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셨다. 성경에는 작은 것이 얼마나 위대한 영향을 끼치는가를 드라마틱하게 소개하여 주는 스토리로 가득하다. 이스라엘은 소수의 작은 나라이지만 세계 역사를 바꾼 나라가 되었다. 다윗은 작은 소년이었지만 골리앗을 쓰러트렸다. 기드온의 300명이 13만5천명의 미디안과 아라비아 연합군을 무찌른다. 엘리야 한 사람이 850명의 우상 숭배자들과 겨루어 이겼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만화 작가의 코믹한 소재에 작은 것이 큰 것을 움직이는 소재가 많이 소개 된다. 미키마우스, 뽀빠이, 아톰 등이다.
따라서 우리는 작은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사소하고 시시한 것을 소홀이 여기기 시작하면 커 봤자 곧 침몰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1억을 선호 한다. 그러나 10원이 모자라면 1억이 아닌 것이다. 말하자면 10원이 모여 백원, 백원이 천원 그렇게 모여야 1억이 되는 것이다.
작은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이거나 틀린 것이거나 무기력하거나 무시되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작은 일과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며 충실하게 해 내며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한다.
성경(누가복음 16:10)에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라고 하였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의(大意)도 한 발 한발 고난의 길(Via Dolorosa)을 가진 것이 아닌가.
우리는 작은 것은 시시해서 안하고 큰 것은 너무 버거워서 안하고 살다 보면 아무것도 아지 않는 무능하고 무기력하고 무감각한 식물인간으로 생존 할 뿐인 것이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하여 사는 자들이 아니라 살아라! 라는 命을 받고 있다.-生命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 비록 더디더라도 꾸준히 한발 한발 나아가자.
동서학원은 49년 전 장성만설립자와 박동순학원장의 작은 첫 삽을 뜨면서 시작되었지만 작은 것에 충성하는 두 분의 신앙일념은 경남정보대학과 부산디지털대학과 함께 오늘의 동서대학 22주년의 영예를 가져 오게 한 것이다. 우리는 한 알의 밀을 셀 수는 있지만 그 밀알 속에 열릴 열매의 수는 셀 수가 없는 것이다.
양사언의 옛 시조(時調)를 다시 한 번 되 뇌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