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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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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목실 2010-09-10

공정한 사회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이 사회를 휘덮고 있다. 아마 총체적으로 우리나라가 공정하지 않는 사회로 달려 온 것을 염두에 둔 담론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일어나는 사회 이슈들이나 사건 사고들이 바로 불공정사회가 만들어내는 것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포츠를 빌어서 말해 본다면 엄격한 경기 규칙이 누구에게나 똑 같이 적용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경기 중에 실수는 있게 마련이고 실수가 없는 경기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프랑스의 축구 전설 이라는 미셸 플라티니는 말하기를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이다. 모든 선수가 완벽한 플레이를 펼친다면 스코어는 영원히 0대0일 것이다." 물론 심판도 공정해야만 하지만 때로는 실수로 오판을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수가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하더라도 선수가 심판 모르게 반칙을 일삼는다면 공정한 게임을 한다고 할 수가 없다. 게다가 경기를 운영해야할 심판이 특정 팀이나 선수를 봐준다면 불공정 게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 동서인들은 어떤가? 학교행정과 교육과정 그리고 교수학습의 프로그램이 공정하게 운영되어 지고 학생들은 공정하게 임하고 있는가? 학교당국이 점검하고 시정해야 할 일들은 기독교적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하여 공정한 학사관리에 임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 학우들은 어떤가? 양심을 속이는 반칙을 일삼는 일은 없는가? 질문을 해 봐야 할 것이다. 정직한 출석과 정직한 과제물, 정직한 시험을 치르는 기본적 게임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 골목 축구에서 국제경기로 가려면 국제수준의 힘든 룰을 지키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과 같이 세계를 품고 세계무대로 가는 동서인들은 아무리 시시한 규칙이라도 스스로 엄하게 지키는 훈련을 쌓아 나가야 할 것이다. 에베소서4:15에는 “범사(凡事 ordinary)에 그(예수님)에게 까지 자라가라.”고 하였다. 작고 시시한 것부터 공정한 잣대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옛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라고 하였다. 공정한 사회는 작은 것 시시한 것부터 공정성을 기하도록 습득되어 져야 한다. 거기에는 기초질서 의식과 정직한 언어생활과 반칙을 정당화하거나 합리화 하지 않는 명쾌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고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불공정 사회를 방조하고 그 속에서 자신도 그 불공정한 사회를 즐기면서 소수의 성공한 대열에 서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반칙왕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학은 불공정한 사회에 적응 하는 비법(?)을 습득하고 배우는 곳이 아니다. 앞으로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비양심적 분위기를 묵인하고 조장하고 부추기는 불공정한 행동을 근절하고 정직하고 공정한 사회를 주도하고 만들어 나가는 지도력을 키우는 동서인들이 다 되기를 기원 드린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구약 역대하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