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277
2022-12-21 10:50
-기조강연 : 19 : 10-20 : 20
주 제 : 「역사에서 본 한일관계와 문명교류 –서울과 교토의 1만 년」
사 회 : 김대식(경남정보대학교 총장)
강 연 : 정재정(서울시립대학교 인문대학역사학과 명예교수)
지정토론 : 이경규(동의대학교 일본어학과 교수)
■행사사진:
한일新시대포럼 5월 월례회
정재정(서울시립대학교 인문대학역사학과 명예교수) “역사에서 본 한일관계와 문명교류 –서울과 교토의 1만 년”
5월 23일(월) 한일新시대포럼 5월 월례회가 개최하여, 서울시립대 정재정 교수의 온라인 기조강연 '역사에서 본 한일관계와 문명교류 –서울과 교토의 1만 년'이 진행되었다.
정재정 교수의 강연은 「서울과 교토 1만 년」이라는 독특한 부제에도 알 수 있듯이 유구의 역사 속에서의 한국과 일본의 문명교류를 통해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자신의 저서인 『서울과 교토 1만 년』을 인용하면서 일본의 역사 도시 교토에 남겨진 한일의 문명교류 유적을 참고하면서 이야기해나갔다.
먼저, 당나라의 도읍 장안(현재의 서안)에 빗대어 8세기 말에 만들어진 교토라는 도시를 풍수지리설로 설명하면서 그 기반이 된 바둑판 거리를 소개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오늘날 교토를 대대적으로 변화시킨 인물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교토의 구석구석에 남겨진 그의 흔적을 소개했다.
교토에 사람이 살 수 있는 도회지로 만든 사람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신라계 사람이라고 하며, 수도 조성에 큰 힘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신라계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 근처에 있는 고류지(廣隆寺)에는 한국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비슷한 나무로 만든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으며, 이는 백제에서 선물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닮은 두 불상을 통해 과거 한국과 일의 문화 교류가 얼마나 밀접했는지 소개하였다.
또한, 히에이잔(比叡山)에 한글로 된 장보고의 현창비, 일본에서 불교를 널리 퍼뜨린 엔닌(円仁), 온조지에서 모시는 신라 대명신, 코잔지(高山寺)에 그려진 그림에 나타나 있는 원효(元暁)와 의상(義湘) 등에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중세시대 한일 양국 지식인들의 상호 존중과 교류를 볼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뜻깊은 교류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한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으로 생긴 이총(耳塚) 등 가슴 아픈 역사를 말해주는 사적도 교토에 남겨져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 시대에는 조선 통신사가 재개되어 활발한 교류를 이어갔지만, 근대로 오면서 교류가 끊어지고, 빠르게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일본은 근대화에 늦어진 조선을 식민지로써 지배하게 되었고, 이러한 근대사의 흔적도 교토에 많이 남아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교토대학교 출신의 유명한 한글 학자 최현배,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태규, 그리고 도시샤대학교 캠퍼스에 시비가 있는 민족시인 윤동주와 그를 세상에 알린 정지용 등을 통해 근대에서의 인적 연결을 소개하였다.
마지막으로 재일 교포 1세대의 실업가 정조문이 수집한 조선의 고고미술품을 토대로 창립한 고려미술관을 소개하면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한일의 매우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양국은 시대마다 문명을 주고받으면서 각자의 문명을 발전시켜 나간 결과, 현재에서는 거의 대등한 수평적인 관계가 되었고, 유구 문명교류의 역사 속에서 한일관계를 다시 바라보자고 제안했다.
강연 후 진정한 의미에서의 “역사 직시”란 무엇인가, 양국의 시민 단체연대의 활동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