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두 나라 정상 교체 시기 맞고
우리나라 정치마저 급격히 요동쳐
사도광산 등 문제로 한일 갈등 재현
트럼프 2기 행정부 공세도 직면해
‘비상계엄' 사태로 관계 개선 영향
외교적 차질 가속화될 가능성 높아
미중 패권 경쟁이 공급망 재편으로 확대되면서 세계 경제 질서의 불확실성이 가속화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제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산이 우려되는 가운데 최근 북한은 러시아와 혈맹국이 되었으며 우크라이나는 한국에 살상 무기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더해 ‘자유와 연대’라는 기조에서 한국 정부와 호흡을 맞춰왔던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지난 10월 이시바 시게루 내각으로 교체되었다.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로 바뀐다. 이처럼 외교·안보 환경이 동시다발적으로 격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정치도 급격히 요동치고 있다.
먼저 일본을 보면, 그동안 한국 정부는 기시다 내각을 상대로 협력관계 구축에 전력을 다해왔다. 가치 외교를 추구하는 우리 정부에게 있어 한국과 유일하게 역내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며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일본과의 협력은 북한과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의 안전보장을 지키는 토대이자, 한미일 안보협력을 심화시키는 촉매이다. 한편 양국 갈등의 주요 원인인 역사 문제는 “물컵의 반을 한국이 채웠으니, 나머지 반은 일본이 채우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라는 이른바 ‘물컵’ 발언이 상징하듯이 일본이 성의를 갖고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2023년 3월에는 문재인 정부 시절 양국 관계 악화의 기폭제로 작용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3자 변제안’을 제시했으며, 이듬해 7월에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찬성했다.
이에 대해 일본의 기시다 총리는 역사 문제를 “마음이 아프다”라는 개인 발언으로 마무리했다. 기시다는 2023년 5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 참배했으며, 같은 해 8월에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 두 나라 대통령과 함께 3국의 안보·경제 협력을 강화했다. 여하튼 3년간 총 14차례의 정상회담 개최가 상징하듯이 기시다 총리는 ‘외교의 기시다’라는 평가에 걸맞게 한일 관계를 효율적으로 관리했다. 그러나 결국, 기시다 후임의 이시바 내각에서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은 재현되고 말았다. 일본이 11월 26일 개최된 사도광산 추도식에서 약속과 다르게 조선인 강제 동원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이번 사건이 양국의 협력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내각 발족 두 달 만에 지지율이 퇴진 위기 수준인 30%에 처해 있는 이시바 총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 이에 한국 정부의 지난 3년간 노력이 기로에 처한 것이다.
더 나아가, 지난달 5일 미국에서 실시된 제47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압승을 거두었으며 의회 선거에서도 공화당은 상·하원 모두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이로써 대통령과 의회를 모두 공화당이 장악한 강력한 트럼프 행정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내년 1월 출범하는 트럼프 제2기 행정부는 자유무역과 민주주의, 법의 지배라는 미국의 가치관을 내걸고 동맹·우호국과의 네트워크 외교를 중시해 온 민주당의 바이든 행정부와는 달리 ‘거래 중심적 동맹관’에 입각해 보다 공세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한국을 배제한 채 김정은 위원장과의 단독 회담을 추진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보다는 북핵 관리를 중시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트럼프는 서방측 지도자로서는 유일하게 김정은과 세 차례나 만났으며 자신의 제1기 행정부에서의 대북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또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 긴장 완화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노벨평화상을 받고자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치 외교를 내걸고 “대한민국, 미국, 일본이 하나가 될 때 더 강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이 더 강하다”라며 대북 압박 정책에 몰두해 온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큰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내년 1월 이시바 총리를 초청해 한일정상회담을 개최해 한일 관계를 보다 돈독히 하고, 트럼프 당선자와는 당선 축하 전화와 골프 회동 등을 통해 정상 간 관계를 강화하면서 대통령의 조기 방미를 추진해 우리의 입장을 설득할 계획을 세워왔다. 이러한 외교 구상이 성공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야당과 국민들의 동의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사태로 야당과의 대립을 넘어 국가 안위와 국민의 일상이 흔들리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미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자국민에게 여행주의보를 발령했으며, 한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개최하려던 스웨덴 총리는 회담 연기를 밝혔다. 외교적 차질은 앞으로 가속화될 것이다. 외교·안보 정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라도 국내 정치가 조속히 안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