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환 동서대 국제물류학과 교수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에 상앙(商앙)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는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강력한 부국강병책을 추진해 훗날 진시황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든 사람이다. 상앙은 법치주의자답게 법의 제정이나 집행에 있어서 백성들이 나라를 믿고 잘 따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한 번은 상앙이 법을 제정해 놓고 공포를 하지 않았다. 백성들의 불신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상앙은 불신을 없애기 위한 계책을 세웠다. 3장(三丈) 높이의 나무를 남문 저잣거리에 세우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금화
10개를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옮기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상앙은 다시 금화
50개를 주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상앙은 즉시 금화
50개를 주어 나라가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했다. 여기서 유래된 고사가 바로 ‘이목지신’(移木之信)이다. 무릇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나라와 백성 간에도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시민들이 주거시설 도입 반대해 온랜드마크 부지 개발업자 공모 시작친수공간·먹거리 확보 가능하려면지역사회 신뢰 속에 추진해야 마땅
부산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의 핵심 구역인 랜드마크 부지 개발을 위한 민간사업자 공모가 시작됐다. 사업지의 면적은
11.3만㎡(약 3만
3000평)로 지구단위계획상 건폐율
40%, 용적률
600%이며, 높이 제한은 없다. 사업 주관기관인 부산항만공사(
BPA)는
11월 초까지 사전참가 신청을, 내년 1월
20일까지 사업참가 신청을 각각 받은 뒤 2월 중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유·무형의 콘텐츠를 활용한 복합용도의 글로벌 어트랙션 및 문화공간’을 조성하도록 공모 지침도 제시했다. 숙박시설 중 생활형 숙박시설(레지던스)은 불가하며, 업무시설 중 오피스텔의 시설면적은 지상층 연면적의
15% 이하로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북항 재개발사업은 부산항 개항 후
140여 년간 시민들과 단절됐던 북항 일원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한국 최초의 항만 재개발사업이다. 이는 부산의 친수공간 조성과 미래 먹거리 발굴이라는 측면 외에도 향후 국내 여타 항만 재개발사업의 본보기가 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국가사업이다. 특히 랜드마크 부지는 북항 1단계 사업부지의 노른자위로 향후 오페라하우스와 함께 북항을 상징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당초 해양문화관광지구로 지정됐던 랜드마크 부지의 활용 방안을 둘러싸고 그동안 관계기관과 시민단체 간 의견이 분분했다.
BPA의 용역 결과는 해양관광 및 국제비즈니스 거점화를 주장했다. 부산시는
2030월드엑스포 유치를 위해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엑스포 실사단의 현장 방문에 맞춰 가시적 성과를 보여 주고자 랜드마크 개발사업자 선정을 서둘러 왔다. 또한 지역 산업 성장 모멘텀을 마련하기 위해 랜드마크 부지에 글로벌 콘텐츠 기반시설을 조성할 것을 수차례 요청했다.
이에 대해 각계 전문가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부산항북항통합개발추진협의회는 수차례 논의를 거쳐 주거시설 도입 불가, 민간사업자 선정의 공정성 확보 및 사업자 선정 후 사업 내용의 변경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 마련 등을 요구했다. 시민사회가 랜드마크 부지에 주거시설을 강력히 반대하는 이유는 북항 1단계 상업업무지구에 이미 생활형 숙박시설이 대규모로 들어서 공급과잉 상태이고, 초고층 빌딩들이 들어설 경우 조망권 침해 등 해양경관이 사유화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모든 시민이 함께 누려야 할 공간인 해안가에 고층 아파트 건축 허가가 잦았던 부산시의 도시건축 행정에 대한 깊은 불신이 한몫했을 터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항만 재개발사업들은 무엇보다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를 고려한 점진적이고 균형 잡힌 방식으로 추진된 게 특징이다. 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 프로젝트는
1997년 사업 개시 이후
2030년 완공이라는 장기 계획 아래 수차례의 마스터플랜 수정과 다수의 건축 및 조경 공모전을 통해 사업의 완성도를 높여 왔다.
2017년 개관한 엘베 필하모닉 콘서트홀은 옛 창고 건물에 철제 구조물을 올려 새로운 복합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고, 전위적인 건축미와 다양한 공연으로 하펜시티의 랜드마크가 됐다. 항만 재개발사업의 성공 요건은 도시와 항만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고려한 추진, 상업성과 공공성의 조화, 접근성 제고를 통한 원도심 재생과의 연계, 친수공간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뛰어난 디자인, 자연재난 예방대책 수립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역사회와의 신뢰 관계 속에 시민들의 협조를 끌어내는 것이 정책 추진력을 확보하는 데 최우선이다. 이목지신이 주는 교훈처럼…. 아무리 작은 권력이라도 견제를 받지 않으면 폭주하며, 감시받지 않으면 부패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에 따른 폐해는 오로지 우리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