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환 동서대 국제물류학과 교수


최근 부산 모 대학 학생들이 필수 교과목인 해기사 승선 실습에 여학생 참여 비율이 남학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차별을 받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해당 대학과 주무부처 장관에게 승선 실습생 선발 시 성별 균형을 확보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선박 특성상 여성을 위한 생활공간 확보가 쉽지 않은 해운기업의 입장, 취업이 대학의 지상과제가 된 현실에서 졸업생의 채용 결정권을 쥐고 있는 해운기업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대학 측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남성 위주의 국내 해운산업 실상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따라 양성평등과 성 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전 산업에 걸쳐 여성 인력의 진출이 활발하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남성 위주였던 물류산업도 여성 인력 진출이 늘고 있다. 미국 가트너사가 발표한 ‘공급사슬 분야 여성 인력 조사’에 따르면 미국 물류산업의 여성 인력 비율은 201635%에서 꾸준히 증가해 202141%에 달한다. 이 가운데 여성 고위 임원 비율은 2016년 7%에서 202115%로 증가했다. 미국 역시 물류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임금과 승진 기회에서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으며, 특히 중견 간부급 여성은 경력개발 기회의 부족 때문에 이직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규 인력 채용 시 성 다양성(diversity), 성평등(gender equality), 포용(inclusion)이라는 DEI 우선 정책에 따라 여성 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이른바 ‘직업의 탈젠더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 ‘유리천장 지수’ OECD 꼴찌

미국 물류산업, 여성 진출 두드러져

양성 협업이 기업 성과·혁신에 도움

여성도 경쟁력·전문성 키워 나가야

한국 사정은 어떨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을 대상으로 직장 내 여성차별 수준을 지표화한 ‘유리천장 지수’를 발표해 오고 있다. 이 지수에서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성별 임금격차, 기업 내 임원 비율,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 10개 항목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는데 한국은 9년째 꼴찌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21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 여성은 남성보다 임금을 32.5% 적게(OECD 평균인 12.8%의 2.5배 수준) 받는다. 또 200대 상장사 등기 임원 중 여성은 4.9%에 불과하고 여성 임원이 아예 없는 기업도 73%에 달했다. 여성 중간관리자 비율 역시 OECD 최하위 수준인 15.4%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국 해운·항만·물류업계의 경우 여성 종사자 현황은 아직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관계로 구체적인 수치를 파악할 수 없으나, 전통적으로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산업 분위기를 고려할 때 국내 평균을 크게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기업들이 여성 인력을 보다 많이 고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다양성은 기업 수익을 증가시킨다. 보스턴컨설팅그룹과 뮌헨공과대학이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높은 성 다양성을 가진 기업은 남성 위주로 구성된 기업에 비해 높은 수익과 재무적 성과를 창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남성과 여성은 사고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즉 다양한 구성원으로 만들어진 조직은 서로 다른 생각이나 의견 그리고 관점을 상호 교류함으로써 문제 해결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업의 성과는 물론 혁신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셋째, 보다 많은 롤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공한 여성 전문가를 많이 배출함으로써 유능한 젊은 여성들이 해당 분야에 유입될 수 있다. 세계 최대 물류기업 DHL의 여성 CEO 사비네 뮐러가 “출신 배경, 성, 문화, 관점 그리고 경험의 다양성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성공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라고 강조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렇다면 해운·항만·물류산업에 유능한 여성 인력을 유인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먼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해운·항만·물류산업의 중요성과 물류산업에서 본인의 경력을 키워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둘째, 최고경영자들이 확고한 성 다양성 의식을 가지고 회사의 채용 시스템(예를 들어 면접에 여성 심사자 참여)에 이를 적극 반영해야 할 것이다. 셋째, 물류업계에서 여성을 위한 탄력근무제, 재택근무, 출산 및 육아 휴가 보장 등 유연한 근로정책들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여성 스스로도 물류산업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여성 특유의 멀티태스킹 기술과 교감 능력을 적극 활용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해 나간다면 조직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물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양성평등을 넘어 양성 협업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부산일보 https://n.news.naver.com/article/082/000116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