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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偏見)에서 정견(正見)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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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목실 2011-04-07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그 사람됨 됨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것을 우리는 세계관이라고 한다. 우리가 좁은 편견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좁아지게 되어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게 되고 말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만사를 편벽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통전적(通全的 wholistic)사고(思考)를 할 수가 없고 편협한 의식 속에서는 스스로 소외되어 비극을 자초하는 실패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편견은 어떻게 우리에게 생겨나는가? 심리학에서는 과거의 나쁜 기억이나 좋은 기억을 잊지 못하여 생기는 초기 정신병적 질환이라 말한다. 이는 과거가 현재의 자아를 지배하도록 허용하면서 생겨나는 현상 즉, 지난 간 것이 아름답다고 하면서 과거의 성공에 취하여 오늘의 위로를 삼는 즉, 세월을 거꾸로 가게 하는 과거 지향적 삶의 태도가 그 하나고, 또 다른 것은 과거의 실패와 아픔에 대한 책임 회피적 원망과 피해의식의 올무에 매여 있어서 과거로부터 자유하지 못하는 삶의 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편견은 우리로 하여금 비겁한 인격의 소유자로 만들고 결국 비열한 인성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편견으로 사는 사람은 강해 보이는 사람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고 약해보이는 사람 앞에서 더 강해져 보이려는 비열한 인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학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가져 왔던 편견을 떨쳐 버리고 세상을 제대로 보는 정견(正見)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제7대 장제국총장님은 우리 동서인들에게 세계를 품고 웅비하는 동서대학으로 가기 위해서 ‘Before동서, After동서’ 라는 케치프레이스(Catch Phrase)를 내 걸으셨다. 그 의미는 동서대학에 오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잊어버리고 이제부터 동서인으로서 가져야 할 새로운 통전적 덕목을 계발(啓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의식과 세계관을 바꿀 수 있겠는가? 결론으로 말하면 편견의 뿌리가 되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왜냐하면 죄로 인하여 상처받은 심령을 치유하는 길은 죄 값을 십자가에서 치르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성경인물중에 가장 편협한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사울이라는 바리세파 사람은 예수 믿는 자들과 교회에 대한 편견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심하게 박해했던 자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그가 결정적 순간에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됨으로서 하나님을 바로 보고 세상을 바로 보는 정견의 사람으로 변화 되어 바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세계를 바꾸어 놓은 인물이 된 것이다.
그의 저서 고린도서 두 번째 책 5장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함으로서 그리그도 안에 있으면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롭게 되는 변화를 드러내 주고 있다. 이를 근거로 하여 미래 지향적으로 바뀐 새로운 세계관을 빌립보서(3:13,14)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편견에서 정견으로 바뀌고 난 새로운 삶의 태도가 얼마나 당당 한가?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야 말로 우리 모든 동서인들이 가져야 할 도전적 자세가 아닐 수 없다. 나 자신의 모든 편견과 동서대학에 대한 편견 그리고 좁아 터친 심보를 십자가에 다 내려놓고 그리스도안에서 다시 시작하는 동서인들이 되기를 기원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