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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24.06.17] [중앙로365] 한중일 정상회의와 한국의 이니셔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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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9 16:13

신정화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
한중일 정상회의 오랜만에 개최
파행만은 막아야 한다는 인식 공유

3국 협력의 잠재력 확인 큰 성과
미중 경쟁 속 구도적 한계는 절감

애초 결성 과정서 한국 적극적 역할
합의된 협력 사항 등 이행 주도해야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간 서울에서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 중국의 리창 총리가 참석한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번 회의는 미중 전략경쟁 구조가 정착된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한중일 정상회의였다. 대통령실은 이번 정상회의가 “세 나라 협력 체제를 완전히 복원하고 정상화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확대되어 온 한국과 일본 대 중국이라는 대립 구도는 해소될 수 있을 것인가?

 한중일 정상회의와 한미일 정상회의를 비교해 보자. 우선 두 회의 모두 3개국으로 이루어진 정상회의로 한국과 일본이 공통으로 참가하고 있다. 한미일 정상회의는 1년 전인 2023년 8월 미국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주요 목적은 북한과 중국 위협에 대항한 안보 협력 체제 강화다. 반면 한중일 정상회의는 2008년에 시작돼 2024년까지 모두 9차례 개최되었으며, 주요 목적은 역내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이다. 한마디로 한미일 정상회의는 군사적 성격, 한중일 정상회의는 경제적 성격을 보다 강하게 띠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중일 정상회의 결성 과정에서 이니셔티브를 발휘한 국가는 다름 아닌 한국이다. 1997~1998년에 발생한 아시아 금융 위기 때 아시아 국가들의 공동 대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김대중 대통령은 아세안+3국(한중일) 정상회의를 주도한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고, 한중일 3개국의 경제력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 노무현 대통령은 그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다. 그리고 2007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위기 상황에서 2008년 12월 제1차 한중일 정상회의가 일본 후쿠오카에서 개최된다. 그로부터 2년여 뒤인 2011년 9월 서울에 설치된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TCS)’은 이와 같은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3국이 의장국을 돌아가면서 맡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상회의는 매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국제 환경의 변화와 두 국가 간 갈등으로 중단되곤 했다. 예를 들어, 2013~2014년은 역사 인식을 둘러싼 한일 간 대립이, 2016~2017년은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 긴장이 원인이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2020~2021년은 개최 자체가 불가능했으며, 2022년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한중 관계가 악화함에 따라 또다시 개최는 연기됐다.

 2019년 12월 중국 청두에서의 제8차 정상회의 이후 약 4년 5개월 만에 개최된 이번 제9차 정상회의에서 나타난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중 간 전략경쟁의 가속화와 동북아지역에서 ‘신냉전’이 도래되는 상황에서 한중일 3국은 관계의 파행까지는 막아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또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밀접한 한중일 협력이 갖는 잠재력을 재차 확인했다. 그런데도 3국 협력이 놓여있는 구도적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중국은 지역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한미일 안보 협력의 이완을 모색했다. 둘째, 협력의 필요성이 누누이 강조되었으나, 협력은 인적 교류, 기후변화 대응, 경제·통상, 보건·고령화, 과학 기술·디지털 전환, 재난·안전 등 비전통 안보 분야에 한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안보 분야인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안정·번영이 우리의 공동 이익이자 공동 책임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긍정적인 노력을 지속”한다는 원론적 합의에 그쳤다. 한일과 중국 간 차이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것이다, 셋째, 한중일 정상회의 기간 중 행해진 한일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라인야후(LINE-Yahoo) 사태다. 이는 일본 정부가 라인야후의 데이터 보안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실상 네이버의 지분 매각을 압박한 것을 말한다. 한국은 “라인야후 사태가 한일 간에 불필요한 현안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라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보여주듯, 한일 관계의 수준에서 이에 접근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경제 안보가 곧 국가 안보”라는 이른바, 경제의 안보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한국과 일본 대 중국만이 아니라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는’ 동일 진영의 한일 사이에서도 보호주의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한중일 관계는 여전히 취약하다. 한국 정부는 한중일 정상회의 결성 과정에서 보인 이니셔티브를 다시 한번 발휘해야 한다. 정상회의의 정례화와 합의된 협력 사항들의 실질적 이행을 주도해서 한중일 정상회의의 경제적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번영은 물론 한반도 평화에 한중일 3국의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