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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일자리를 뺏는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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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18:08


 

 




‘로봇의 등장은 막을 수 없는 미래이다.’

 

필자가 로봇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최근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로봇 산업에 경쟁적으로 투자하는 천문학적인 지원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스마트 폰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어느 순간 로봇이라는 기계가 우리 삶에 갑자기 깊숙하게 파고들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로봇은 각종 사회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로봇으로 인한 실업 문제는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이다.

 

인간은 효율성 측면에서 로봇을 이길 수 없다. 고용주 입장에서 보면 월급을 주지 않아도 24시간 묵묵히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로봇은 인간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근로자이다. 최소한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 로봇은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만들 것이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당장 들어가야 할 의료비, 주거비 등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배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이전보다 더 열악한 근로 조건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중산층 인구가 감소하고 빈민층이 증가하며, 이로 인해 내수가 악화될 것이다. 로봇의 투입이 개별 기업 입장에선 당장 생산 효율성이 높아지겠지만, 결국 내수 경기 침체로 경제 자체는 불황에 빠지게 된다.

 

하이에크가 신봉한 ‘보이지 않는 손’은 ‘인간들만의 세상’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이론일 뿐, 인간과 로봇이 함께 살아갈 미래 세상에는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로봇이 만들 경제적 위기 상황은 새로운 자본주의의 출현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필자는 로봇이 만들 실업 문제를 풀 방법으로 윌리엄 베버리지가 제안한 ‘자유 사회에서의 완전 고용’을 주목한다. 사회 보장 제도의 주창자라고 할 수 있는 베버리지는 정부가 나서서 사람이 살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료, 교육, 주거 및 기본 소득을 보장해 줌으로써 모두가 행복한 ‘따뜻한 경제'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의 주장은 이미 1944년 발표된 ‘자유 사회에서의 완전 고용’이라는 보고서에 소개된 것이다. 완전 고용과 빈곤 퇴치에 대해 기술한 400페이지가 넘는 길고 긴 내용을, 그의 책 뒤표지에 쓰여 있는 단 한 문장이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다.


“비참함은 증오를 낳는다.(Misery generates hate.)”


그의 주장은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 줌으로써 그들의 구매력을 높이고, 높아진 구매력이 사회에 돈을 돌게 함으로써 내수가 살아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점점 더 주목받는 이론이 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 개념을 복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 같다. 복지 자본주의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은 스웨덴, 덴마크 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이다. 또한 브라질의 룰라 정부는 복지 자본주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해 내수 경기를 살렸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2013년 기준으로 세계 경제 규모 7위까지 올라가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다면 복지란 무엇인가? 복지란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주는 사회 안전망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먹고사는 문제를 국가가 보장해 주는 것, 그럼으로써 모두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복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국가가 그럴 돈이 어디 있느냐’며, 그럴 돈이 있으면 선택과 집중을 잘해서 잘될 기업을 집중적으로 밀어주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는 반론이 뒤따른다.

 

이런 반론은 산업화 시대에는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수출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는 선진국형 불황을 겪을 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내 산업의 육성으로 내수를 키워야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즉, 수출과 내수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쌍끌이로 경제를 이끌어야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내수가 위축되어 어려움을 겪는 일본식 선진국형 불황을 겪고 있다. 경상수지와 무역수지는 매년 신기록을 갈아 치우면서 성장하고 있는데, 정작 대다수 국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이러다가 혹여 수출마저 무너져 버리면 우리 경제는 곧장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수출 증대만으로 국민들의 실질 소득 향상을 이룰 수 없는데도, 바로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내수를 키우려는 정책은 계속해서 수출 장려 정책에 밀리고 있다.

 

나는 수출과 내수의 문제를 떠나, 정작 문제의 핵심은 부의 편중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 기업들이 장사를 잘해서 벌어들인 돈이 그 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게 아니라 일부 자본가들에게만 배당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불황이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부의 총량은 일정한데, 이것이 일부 사람들에게만 편중되어 있으면 사회 전체적으로 소비하는 양이 줄어들고, 따라서 내수가 위축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혹자는 부자들이 씀씀이가 더 크기 때문에 부자들이 더욱 부자가 되어야 소비와 투자가 살아난다고 한다. 한때 유행처럼 번지던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말은 틀린 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한 사람이 하루에 열 끼니를 먹을 수는 없다. 하루에 고작 세 끼를 먹을 수 있을 뿐이다. 가난한 다수의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이 부자 한 사람이 소비할 수 있는 능력보다 뛰어나다. 돈이 소수의 부자에게 집중될수록 금융권으로 들어가는 돈이 많아지기 때문에 시중에 도는 돈의 양인 ‘통화량’이 적어진다. 비록 금융권이 신용 창출로 통화를 창출해 낸다고 하지만, 각 개인이 돈을 돌고 돌려서 만들어 내는 각 개인의 수입 증가를 따라오기는 힘들다.

 

바로 이것이 위에서 설명한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취한 정책이다. 한 사람에게 집중된 막대한 돈보다 백 사람이 나눠 가진 적은 돈이 경제를 살리는 데 더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게 그의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정책으로 브라질을 세계 7위의 경제 대국으로 이끌었다. 우리나라가 15위를 차지하던 2013년 기준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복지 자본주의가 어째서 로봇이 초래할 실업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인가? 복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실직한 사람에게 일정 기간 동안 실업 수당을 주면서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직업 교육을 시켜 준다. 더불어 교육과 의료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되고, 주거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삶을 영위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복지 자본주의가 일단 본궤도에 올라서기만 한다면, 이런 사회에서는 실업이 두렵지 않고, 실직하더라도 두 번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 말은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그대로 낙오되어 빈민으로 전락해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회 전체로 확대해서 보면, 로봇으로 인해 직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업의 종류가 변하는 것일 뿐이다. 즉, 자의든 타의든 더 이상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은 로봇으로 대체되고, 사람들은 다시 ‘사람밖에 할 수 없는 직업’으로 자연스레 이동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적절한 관련 법규들을 제정하여 회사들이 고용할 수 있는 로봇의 한계 수를 제한한다면, 저출산 노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로봇 남용으로 인한 실업 사이의 완벽한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즉, 사회 전체적인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

 

이렇듯 사회 전체적인 현상을 크고 길게 보면 로봇이 등장하게 될 미래 사회에서 복지 사회가 신자유주의 사회보다 훨씬 경쟁력 있는 시스템이다. 경쟁력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복지에 대한 비용도 충분히 지불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선순환을 통한 국부의 창출이 ‘국가가 그럴 돈이 어디 있느냐?’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로봇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복지 자본주의가 기본 경제 시스템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신념이다. 복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서 로봇은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골칫덩어리가 아니라 경제를 선순환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출처_2015.03.03/ by 기술인문융합창작소 in 전문가칼럼

키워드 : 로봇, 실업, 경제